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여행! 일본의 구마모토 홀로 감성여행

by love007 2025. 9. 4.
반응형

‘조금 외진 곳으로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 눈에 들어온 곳이 있었다. 일본 규슈의 구마모토현. 후쿠오카나 벳푸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오히려 그런 점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계절은 초가을. 바람은 선선하고, 해는 여전히 따뜻했다. 너무 뜨겁지도, 너무 춥지도 않은 완벽한 여행의 타이밍. 그렇게 나는 구마모토로 향했다.

첫날 – 구마모토성, 흔적 속을 걷다

구마모토역에 도착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구마모토성(熊本城). 2016년 지진 이후 복구 작업이 이어지고 있었지만, 그 모습마저 위엄 있고 인상 깊었다. 검은 성벽 위로 가을 햇살이 부드럽게 떨어지고 있었다. 주황빛으로 물든 나뭇잎들이 간간이 흩날렸고, 관광객도 많지 않아 조용히 성 안을 둘러볼 수 있었다.

성 내부를 걷는 내내,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특히 성을 지탱하는 돌담의 곡선은 아름답고도 단단했다. 지진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는 곳이 있었지만, 그 위로 올라온 새 돌들엔 누군가의 땀과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회복과 재건, 그 자체가 하나의 풍경처럼 느껴졌다.

성 근처 찻집에 들러 ‘구마모토 녹차’ 한 잔을 마셨다. 창밖에는 단풍이 조금씩 물들어 가고 있었고, 느릿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처음으로 여행을 왔다는 실감이 났다. 마음이 서서히 느슨해지는 느낌. 그 순간부터 이 여행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둘째 날 – 아소산의 초가을과 구름의 경계

구마모토 여행에서 가장 기대했던 곳, 아소산(阿蘇山).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활화산이자, 거대한 칼데라 지형을 품은 아소는 자연의 스케일이 다르다. 구마모토역에서 열차를 타고 아소역에 도착한 후, 현지 버스를 타고 산 정상 부근까지 이동했다.

초가을의 아소는 풀빛과 갈색이 공존하는 들판이었다. 완전히 붉게 타오르기 전의 은은한 색감. 등산객 몇 명이 조용히 산을 오르고 있었고, 멀리 말들이 풀을 뜯고 있었다. 말을 가까이서 본 것도 처음이었고, 그렇게 조용한 목장도 처음이었다. 바람에 풀잎이 흔들리는 소리가 유일한 배경음이었다.

정상 부근에서 본 아소 분화구는 바람이 만들어낸 구름과 연기가 섞여 몽환적인 풍경을 자아냈다. 평소에는 위험해서 접근이 제한되기도 한다는데, 다행히 이날은 날씨가 좋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하늘은 맑고, 땅은 거칠고, 그 사이에 내가 있었다. 이질적이지만 묘하게 조화로운 그 풍경에 나는 오랫동안 말을 잊었다.

산을 내려와 근처 마을 온천에 들렀다. 소박한 노천탕이었지만, 피부에 닿는 물이 부드럽고 따뜻했다. 탕 안에서 마주친 현지 아주머니는 “이 계절이 아소에서 제일 좋아요. 조금만 있으면 억새가 가득해지거든요.”라며 조용히 말씀하셨다. 그 말이 어쩐지 마음에 오래 남았다. 현지인의 계절을 함께 느낄 수 있다는 건, 여행자에게 가장 큰 선물이다.

셋째 날 – 미나미아소와 지역 음식, 그리고 작은 인연

여행 마지막 날은 미나미아소(南阿蘇) 지역으로 향했다. 구마모토에서도 더 한적하고, 자연과 가까운 마을. 길을 걷다 보면 논과 밭이 이어지고, 벼가 노랗게 익어가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그 사이사이 작게 열린 마을 축제 현장에서 아이들이 풍선을 들고 뛰어다녔다.

작은 식당에 들렀다. 메뉴는 지역 특산품인 아카우시(赤牛) 덮밥. 구마모토산 적갈색 소고기를 숯불에 구워 밥 위에 올린 간장 베이스의 덮밥이었다. 첫 입을 베어물자, 육즙과 향이 입 안을 가득 채웠다. 거기에 곁들여 나온 미소된장국, 우엉조림, 그리고 단호박 샐러드까지. 지극히 평범하지만, 그 평범함이 감동적인 맛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려는데, 가게 주인 아저씨가 내게 말을 걸었다. “혼자 여행 중인가요?”라고.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아저씨는 잠시 웃으며 “이곳은 외국인이 거의 안 오거든요. 와줘서 고마워요.”라고 하셨다. 그 짧은 말 한 마디에 마음이 찡했다. 그리고 그게 이 여행의 클라이맥스였다.

돌아오는 길 – 낯선 곳이 주는 익숙한 위로

구마모토에서의 초가을은 말이 없었다. 대신 많은 걸 보여줬고, 더 많은 걸 느끼게 해줬다. 조용한 성의 그림자, 드넓은 초원 위의 구름, 온천물의 온기, 그리고 사람들의 따뜻한 말투. 어디를 가도 북적이지 않았고, 그래서 더 집중할 수 있었다. 나에게, 그리고 지금 이 계절에게.

돌아오는 열차 안에서, 창밖으로 지나가는 황금빛 논과 산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언젠가 마음이 복잡해질 때, 다시 이곳을 떠올릴 것 같았다. 그리고 또 오게 될 것이다. 아무런 이유 없이. 그냥 가만히 쉬고 싶을 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이 계절의 공기를 마시고 싶을 때.

"구마모토는 나에게 가을을 알려준 도시였다. 조용하지만 깊고, 낯설지만 익숙했다."

구마모토성을 찍은 사진입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