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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일본! 우동보다 깊었던 여행, 일본 카가와현에서 보낸 3일

by love007 2025. 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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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시코쿠 지방에 위치한 카가와현. 이곳은 일본에서 가장 작은 현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지만, 내게는 가장 넓고 깊게 기억된 여행지로 남아 있다. 도쿄나 오사카처럼 이름만 들어도 떠오르는 곳은 아니지만, 그래서 더 특별했다.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우동이 그렇게 맛있다더라.”는 이야기 한 줄. 하지만 막상 도착하고 나니, 이곳은 단지 우동만으로 기억되기엔 아쉬운, 사람, 풍경, 감정이 함께 있는 공간이었다.

첫날 – 다카마쓰, 리쓰린 공원에서 느낀 '여유의 미학'

여행의 시작은 다카마쓰시. 카가와현의 중심 도시이자, 시코쿠로 들어오는 관문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다. 시내는 그리 크지 않지만 정갈하고 깨끗했다. 체크인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 곧장 리쓰린 공원(栗林公園)으로 향했다. 이곳은 일본 3대 정원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현지인과 정원 애호가들 사이에선 “실제로 가장 아름다운 정원”으로 불린다.

입구에서부터 고요한 분위기가 느껴졌고, 발을 내디딜수록 마음이 차분해졌다. 잔잔한 연못 위로 떠 있는 정자, 부드럽게 휘어진 소나무, 그 아래를 천천히 걷는 사람들. 시간이라는 개념이 사라진 듯했다. 사진을 찍기보다 그냥 앉아 조용히 바라보는 시간이 더 많았다. 정원 안의 찻집에서 마신 말차 한 잔은, 여행이 아닌 일상의 쉼처럼 느껴졌고, 그것만으로도 이곳에 온 의미가 충분했다.

산책 중에 만난 현지 할머니는 조용히 다가와 나를 바라보며 “한국인인가요?”라고 물었다. “네.” 하고 웃자, 반가운 듯 “요즘 한드 재밌게 보고 있어요.”라며 화제를 이어갔다. 짧은 대화였지만, 그 따뜻함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혼자였지만, 절대 외롭지 않았던 첫날이었다.

둘째 날 – 우동 성지 순례, 면 한 그릇에 담긴 정성

둘째 날은 오롯이 우동을 위한 하루였다. 카가와는 일본에서 ‘우동 현(うどん県)’으로 불릴 정도로 사누키 우동으로 유명하다. 이곳 사람들은 아침부터 우동을 먹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에 두세 그릇은 기본이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다.

첫 번째 방문한 곳은 산속에 숨어 있는 야마우치 우동(山内うどん). 네비게이션 없이 찾아가기 힘들다는 말이 맞았다. 차 한 대 간신히 들어갈 만한 시골길 끝에, 오래된 민가 같은 건물이 보였고, 사람들이 조용히 줄을 서 있었다. 간단한 자동 자판기에서 메뉴를 고르고, 직원에게 쿠폰을 주면 직접 삶아 우동을 내어준다. 흔한 것 같지만, 한입 먹자마자 탄성이 나왔다. 쫄깃한 면, 깊고 투명한 국물,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정성.

이후로도 ‘나카무라 우동’, ‘카마다 우동’, ‘다이슈 우동’을 연이어 방문했다. 각 집마다 면의 굵기, 삶는 시간, 국물의 스타일이 전혀 달랐다. 어떤 곳은 고명으로 생달걀을 얹기도 했고, 어떤 곳은 유자껍질을 띄워 상큼함을 더하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건, 한 가게 주인이 웃으며 건넨 말이다. “이 우동, 오늘 아침 4시부터 손으로 만들었어요.” 순간, 면 한 그릇이 아니라 이 지역의 아침이, 삶이, 문화가 그대로 담긴 음식</strong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하루 동안 네 그릇의 우동을 먹었지만, 질리지 않았다. 오히려 다음날 아침에도 생각날 만큼, 그 감칠맛은 오래도록 남았다. 그리고 식당마다 느껴지는 사람들의 태도, 그 조용하지만 따뜻한 환대는 이곳에서 우동이 단순한 먹거리가 아님을 알려주었다.

셋째 날 – 고토히라궁과 나오시마에서 만난 예술

셋째 날은 조금 더 이른 아침을 시작했다. 목적지는 고토히라궁(琴平宮), 일명 '곤피라상'이라 불리는 신사다. 다카마쓰에서 열차로 한 시간 남짓, 고토히라역에 도착해 입구부터 이어지는 785개의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계단을 오르는 내내 숨은 찼지만, 주변엔 노인도, 어린이도 모두 같은 걸음을 걷고 있었다. 땀을 흘리며 함께 오르는 그 길에는 이상한 연대감이 있었다.

마침내 도착한 본당. 그곳에서 내려다본 마을 풍경은 눈이 시릴 만큼 아름다웠다. 소원을 빌며 두 손을 모았고, 잠시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이곳은 관광지가 아니라, 삶의 일부이자, 지역의 정신</strong이었다.

오후에는 나오시마 섬으로 향했다. 현대 미술로 유명한 이 작은 섬은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품고 있었다. ‘베네세 하우스’, ‘이우환 미술관’, ‘지중미술관’은 예술 애호가가 아니어도 감탄할 수밖에 없는 공간이었다. 섬 곳곳에 설치된 작품들과 마을에 스며든 창작의 흔적들은 예술이 일상 속에서 살아 숨 쉬는 방식</strong을 보여주었다.

특히 해 질 무렵, 해변에서 본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 조형물’</strong은 잊을 수 없다. 바다 위에 떠 있는 듯한 그 노란 호박은 묘하게 따뜻하고도 외로웠다. 사람도 많지 않고, 음악도 없고, 오직 바람과 파도 소리만 들리던 그 순간. 여행의 마지막 날, 마음이 차분해졌다.

여행을 마치며 – 조용한 진심이 있는 곳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창밖을 보며 생각했다. '내가 왜 이곳을 좋아하게 되었을까?' 카가와현은 특별한 무언가를 내세우기보다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에 진심을 담는 곳이었다. 면 한 그릇, 정원 한 구석, 계단 하나, 사람이 건네는 말 한마디까지. 그 모든 것이 느리고, 조용하고, 담백했다.

사람에 따라선 ‘심심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심심함’이 주는 평온이 무엇보다 소중했다. 카가와는 일본에서 가장 작은 현이지만, 내게는 가장 큰 기억을 남긴 여행지다. 다음엔 꼭 누군가를 데려오고 싶다. 말없이 그 사람 손을 잡고,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이런 일본도 있어. 네가 좋아할 거야."

일본의 우동을 사진으로 찍은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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