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생각한다.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도시’가 있다면, 그곳은 어떤 곳일까?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오래된 무언가를 지키며 살아가는 도시. 그리고 그 도시를 천천히 걸어볼 수 있다면 어떨까. 그런 상상을 품고 찾아간 곳이 중국 장시성의 징더전(景德镇)이었다.
첫날 – 도자기의 향기, 낮은 담장 속에서 시작된 여행
징더전은 천년의 도자기 도시라 불린다. 송나라 시기부터 중국 황실에 백자를 공급하던 도시, 그 역사가 지금도 숨 쉬는 곳이다. 공항에 도착하자 가장 먼저 느껴진 건 습한 공기 속 은은한 흙냄새였다. 버스를 타고 시내로 들어서니 낮은 건물과 도자기 모양의 가로등, 골목길 벽화들이 반겨주었다.
숙소는 타오시엔 구역(陶溪川) 근처의 작은 민박이었다. 호스트는 도자기 작가였고, 집 안 구석구석엔 직접 만든 머그잔, 찻잔, 꽃병들이 놓여 있었다. “모두 다 손으로 만든 거예요.” 그녀의 말에 찻잔 하나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투박하면서도 온기가 느껴지는 곡선. 쓰는 사람을 위한 손의 기억이 깃들어 있는 듯했다.
오후엔 타오시엔 거리의 공방들을 천천히 둘러봤다. 물레를 돌리는 소리, 유약을 칠하는 붓질, 도자기 굽는 화덕의 열기. 공방마다 색감과 형태, 질감이 조금씩 달랐고, 작가들의 손놀림에는 확신과 여유가 묻어 있었다. “이건 구운 후에 어떻게 색이 나올지 아무도 몰라요.” 한 젊은 작가가 웃으며 말했다. 예측할 수 없는 아름다움, 그것이 이 도시의 리듬이었다.
둘째 날 – 아침 장터와 전통 식당, 그리고 도자기 시장
이른 아침, 숙소에서 자전거를 빌려 난찬 도자기시장(南昌陶瓷市场) 근처 전통 장터로 향했다. 거리마다 채소, 과일, 향신료, 그리고 작은 도자기들이 놓여 있었다. 이른 시간인데도 시장은 활기찼고, 사람들의 목소리와 가격 흥정이 이어졌다. 가판대에 앉은 할머니가 내게 손짓하며 웃었다. “이거, 아침에 직접 구운 만두야.”
그 자리에서 먹은 사오롱바오(小笼包)는 육즙이 꽉 차 있었고, 함께 나온 흑식초가 입맛을 돋웠다. 옆 테이블에 앉은 중년 부부는 나를 힐끗 보더니 “혼자 여행이세요?”라고 물었다. 나는 미소로 답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징더전 토박이라고 하며, “이 도시는 도자기만 유명한 게 아니라, 사람들도 오래된 걸 좋아해요.”라고 했다.
식사 후에는 주요 도자기 시장을 둘러봤다. 공방이 아닌 상점들에서는 크고 화려한 작품들이 진열되어 있었고, 해외 바이어들과 거래 중인 모습도 종종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더 마음이 가는 곳이 있었다. 구석의 작은 상점, 한 노인이 손수 만든 찻잔을 팔고 있는 곳. 그곳에서 손바닥 크기의 백자 찻잔을 하나 골랐다. 주름진 손으로 찻잔을 건네며 그는 말했다. “이건 40년을 만든 내 손이 기억하는 모양이야.”
그 말이 하루 종일 내 마음에 남았다. 우리는 얼마나 오래 같은 것을 붙잡고 살아갈 수 있을까. 얼마나 오래, 잊히지 않도록 반복할 수 있을까.
셋째 날 – 도자기 마을을 걷다, 바람과 온기가 있는 골목
여행의 마지막 날, 나는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징더전 도자기 마을(陶阳里历史文化街区)로 향했다. 이곳은 복원된 고택들과 공방, 전시관이 함께 어우러진 공간으로, 도자기의 역사와 삶이 함께 흐르는 장소였다. 초가을의 따스한 햇살이 담벼락을 타고 흘렀고, 바람은 도자기 냄새와 흙의 향기를 실어 나르고 있었다.
좁은 골목을 걷다 보니, 마당 한켠에서 아이들이 흙장난을 하고 있었다. 그 옆에서는 작가 한 분이 초벌 구운 찻잔에 청화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나는 멀찍이 앉아 그 모습을 오래 바라봤다. 말 한 마디 없었지만, 붓의 움직임은 음악처럼 일정했고, 그 순간만큼은 시간이 멈춘 듯 했다.
길 끝의 조용한 찻집에 들어갔다. ‘혼자 앉을 수 있는 창가 자리’를 달라고 했고, 따뜻한 국화차와 흑설탕 케이크를 주문했다. 국화의 향이 코끝에 닿는 순간, 마음이 가라앉았다. 내가 이 도시에 온 이유가 명확해지는 느낌이었다. 누군가와 이야기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 그저 조용히 ‘머무는’ 것만으로 충분한 시간.
돌아오는 길 – 손끝에 남은 감정들
돌아오는 날 아침, 민박 주인은 작별 인사를 하며 작은 흙찻잔 하나를 건네줬다. “이건 처음 배울 때 만든 거예요. 모양은 예쁘지 않지만, 그 시절이 담겨 있어요.” 나는 두 손으로 찻잔을 받았다. 그 안엔 형태보다 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비행기 안에서, 창밖으로 멀어지는 도시를 보며 나는 생각했다. 징더전은 내게 ‘속도보다 결’을 알려준 도시였다. 빠르지 않아도 괜찮다고, 잘 다듬어진 하나의 곡선처럼 살아가는 것도 충분히 아름답다고 말해주는 도시. 고요하지만 묵직했고, 조용하지만 풍부했다.
나는 돌아와서도 그 작은 찻잔에 따뜻한 차를 따른다. 그리고 그 안에서 흙냄새, 바람, 사람의 손길을 다시 느낀다. 징더전은 여행지이기 이전에 감정이 남는 장소였다. 내가 조용히 머물 수 있었던 가을의 도시.
"그곳은 흙으로 만든 모든 것처럼, 단단하고 따뜻한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