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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중국 후난성 펑황고성, 여행후기

by love007 2025. 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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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소음과 빽빽한 일정에서 벗어나고 싶던 시점, 나는 우연히 사진 한 장을 보게 되었다. 물가에 비친 고풍스러운 건물, 천천히 노를 젓는 배, 그리고 연한 안개 속 강가의 풍경. 그곳은 중국 후난성의 펑황고성(凤凰古城)이었다. 이름처럼 ‘봉황’이 머물다 간 듯한 고요한 분위기에 이끌려, 나는 짐을 꾸렸다. 초가을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10월 초, 혼자만의 감성 여행을 위해.

첫날 – 툰강(沱江)을 따라 걷는 첫 발걸음

장자제에서 버스를 타고 몇 시간을 달려 도착한 펑황고성. 성벽으로 둘러싸인 이 도시는 강과 함께 살아가는 마을이었다. 숙소는 툰강 강가에 자리한 전통 가옥을 개조한 민박이었고, 방 안 창문을 열면 바로 물소리가 들려왔다.

짐을 풀고 밖으로 나서자, 강을 따라 이어진 나무 길과 돌다리가 발밑에 펼쳐졌다. 초가을의 햇살은 따갑지 않고 부드러웠으며, 물에 반사된 빛이 벽면을 타고 올라가 유려한 그림을 만들고 있었다. 소박한 가게에서는 묵향이 나는 부채와 수공예품이 진열되어 있었고, 옆에서는 민속 음악이 잔잔히 흘러나왔다.

걷다가 우연히 마주친 목조 다리 위 찻집에 들어섰다. 강 위에 떠 있는 듯한 구조였고, 바닥 아래로는 물살이 지나가고 있었다. 창가 자리에 앉아 자스민차 한 잔을 시켰다. 향기로운 차 향과 느릿한 물결, 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배 노 젓는 소리가 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아, 정말 다른 곳에 왔구나.” 처음으로 그런 감정을 느꼈다.

둘째 날 – 새벽 안개 속 마을, 잊히지 않는 풍경

펑황고성의 아침은 특별하다. 안개가 강 위를 뒤덮고, 마을 전체가 수묵화처럼 변하는 시간. 새벽 다섯 시, 일부러 일찍 일어나 강가를 걸었다. 아직 사람들의 인기척은 없었고, 물 위엔 뿌연 안개가 잔잔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강 건너편의 전통 가옥이 희미하게 보였고, 그 사이사이로 희미한 불빛이 흔들렸다.

노인이 한 사람, 작은 배를 타고 강을 건너고 있었다. 물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았고, 풍경은 마치 멈춰 있는 듯했다. 나는 다리 위에 앉아 그 장면을 한참 바라봤다. 아무 말도, 움직임도 없는 그 순간이 가장 선명한 기억이 되었다.

아침 식사는 골목 안 작은 국숫집에서 해결했다. 메뉴는 간단했다. 마라 쌀국수(麻辣米线)와 삶은 달걀. 뜨끈한 국물에 들어 있는 고수와 고추기름, 그리고 후추의 알싸함이 새벽 추위를 단숨에 녹였다. 주인 할머니는 내가 외국인인 걸 알아차리고 “처음 왔어요?” 하며 웃으셨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는 “이 도시엔 오래 머무를수록 정이 들어요.”라고 말했다.

셋째 날 – 토가족 마을과 잊을 수 없는 밤 풍경

셋째 날은 고성 외곽의 토가족(土家族) 마을을 방문했다. 펑황은 소수민족 문화가 살아 숨쉬는 도시이기도 하다. 택시를 타고 언덕길을 따라 도착한 마을은 목조 가옥과 작은 사당이 어우러진 곳이었다. 마을 입구에서 만난 청년은 자원봉사로 마을을 소개하고 있었고, 나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그는 내게 토가족의 전통 복장을 입어보게 해주고, 마을 공동 우물과 공예 작업장을 소개해줬다. 아이들이 나를 따라다니며 “한국 사람이에요?” 묻고, 수줍게 웃었다. 점심은 그가 데려간 가정집에서 얻어먹었다. 직접 기른 채소, 묵은지 볶음, 훈제 생선, 그리고 찹쌀로 빚은 토가족 떡. 식탁에서 나눈 말과 밥의 온도는, 그 어떤 고급 레스토랑보다 따뜻했다.

해가 지고 마을로 돌아오는 길, 펑황고성의 야경은 또 다른 세계였다. 건물 하나하나에 조명이 들어오고, 강 위엔 수천 개의 등이 떠 있었다. 목조 다리는 황금색으로 빛나고, 다리 아래로는 유유히 흘러가는 배들이 지나갔다. 나는 다시 찻집에 들러, 이번엔 오미자차 한 잔을 시켰다. 쌉싸름하고 달콤한 맛이 입안에 감돌았고, 눈앞의 풍경은 그대로 마음에 담겼다.

돌아오는 길 – 기억에 오래 남을 풍경

펑황고성을 떠나는 아침, 다시 짐을 싸고 숙소를 나서며 뒤를 돌아봤다. 나무 문, 붉은 등롱, 그리고 천천히 흐르는 강물. 처음 만났을 땐 낯설었던 이 풍경이, 이제는 이상하리만큼 익숙하게 느껴졌다. 그저 며칠 머물렀을 뿐인데, 마음 한구석이 비어지는 느낌이었다.

여행이 끝난 후에도 나는 종종 펑황을 떠올린다.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되는 도시, 그저 조용히 걷고, 앉고, 머무르기만 해도 충분했던 곳. 사람들은 친절했고, 음식은 따뜻했으며, 풍경은 잊히지 않았다. SNS에 올릴 만한 자극적인 요소는 적었지만, 마음속에 오래 남는 장면은 그곳에 있었다.

“가을의 시작이 이렇게 조용하고, 따뜻할 수 있다는 걸 펑황에서 처음 알았다.”

투오장강의 전경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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