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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헝가리 쇼프론(Sopron)

by love007 2025. 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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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의 서쪽 끝자락, 오스트리아 국경선 바로 옆에 자리한 쇼프론(Sopron)은 헝가리라는 나라의 경계에 서 있지만, 정작 그 분위기는 국경을 넘은 유럽의 감성을 더 진하게 풍깁니다. 이 도시는 대도시의 화려함은 없지만, 조용한 골목마다 시간이 스며 있고, 와인 한 잔에 이야기가 묻어나는 그런 ‘느낌 있는 도시’입니다. 부다페스트에서 기차로 2시간 남짓. 많은 이들이 이곳을 그냥 지나치지만, 알고 보면 쇼프론은 헝가리의 진짜 멋이 시작되는 지점일지도 모릅니다.

1000년의 역사를 간직한 국경 도시

쇼프론은 헝가리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로, 그 기원은 로마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이곳은 스카르바(Scarbantia)라는 이름의 군사 요충지였으며, 지금도 구시가지 중심 광장에서 로마 시대의 도로 유적과 유물들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쇼프론을 역사적으로 특별하게 만든 사건은 바로 1921년의 국민투표</strong입니다.

1차 세계대전 후 트리아농 조약으로 많은 영토를 잃은 헝가리. 쇼프론은 당시 오스트리아로 넘어갈 위기에 처했지만, 주민 투표 결과 65%의 시민들이 헝가리에 남기를 선택했습니다. 이 선택은 헝가리인들에게 큰 자긍심을 안겨주었고, 이후 쇼프론은 "충성의 도시"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죠.

이 도시의 역사는 단순한 연대기가 아닙니다. 골목을 걷다 보면 시간의 결이 그대로 느껴지는 건물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중세풍의 탑, 바로크 양식의 성당, 19세기풍의 시청 건물까지. 마치 작은 유럽 도시들의 단면이 한곳에 모여 있는 듯한 인상입니다.

문화와 유럽 감성이 공존하는 도시 풍경

쇼프론은 헝가리지만 오스트리아 국경과 너무 가까워서 사람도, 문화도, 분위기도 이중 언어처럼 섞여 있습니다. 거리 간판은 헝가리어와 독일어가 함께 쓰이고, 노천 카페에서는 모차르트 음악이 흘러나오죠. 주민들 중 상당수는 오스트리아로 출퇴근하며, 일상 속에 유럽적인 감성이 자연스럽게 스며 있습니다.

특히 인상 깊은 장소는 파이언탑(Firewatch Tower, Tűztorony)입니다. 쇼프론의 랜드마크이자 가장 높은 구조물로, 꼭대기에 오르면 도시 전경과 멀리 오스트리아 알프스까지도 한눈에 들어옵니다. 탑 자체도 13세기부터 이어진 역사적 구조물이지만, 이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주는 감동은 단순한 관광지를 넘는 경험이 됩니다.

구시가지의 골목길은 영화 세트처럼 잘 보존되어 있고, 곳곳에 미술관과 소극장, 클래식 공연장이 숨어 있어 작지만 세련된 문화 도시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여름이면 광장에서 열리는 재즈 공연이나 클래식 연주회는 누구든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어, 도시 전체가 하나의 무대가 되는 느낌을 줍니다.

쇼프론 와인과 요리, 천천히 즐기는 미식의 시간

쇼프론의 미식 여행은 한 잔의 와인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 도시는 헝가리에서 가장 오래된 와인 생산지 중 하나이며, 특히 쾨크프랑코시(Kékfrankos)라는 품종으로 만든 레드 와인이 유명합니다. 독일에서는 블라우프랑키쉬로 알려진 이 와인은 부드럽고 가벼우면서도 산미가 살아 있어, 쇼프론의 음식들과 정말 잘 어울립니다.

도시 주변에는 소규모 와이너리들이 산재해 있고, 몇몇은 직접 운영하는 레스토랑도 함께 갖추고 있어 현지 음식을 와인과 함께 즐길 수 있습니다. 오스트리아와 가까운 영향으로 헝가리식 요리와 독일식 요리가 자연스럽게 섞여 있는데, 대표적인 메뉴는 헝가리식 구운 오리요리, 파프리카 치킨 스튜, 슈니첼 등입니다.

쇼프론의 전통 음식 중에서도 세굴레시(Szeged Gulyás)는 꼭 맛봐야 할 요리입니다. 일반 굴야시보다 국물이 많고 파프리카 향이 강하며, 국수나 수제 면을 곁들여 식사로도 충분합니다. 여기에 소박한 샐러드와 지역산 흑빵이 곁들여지면 완벽한 현지식이 완성됩니다.

디저트로는 도보슈 토르타(Dobos Torta)팔라친타(Palacsinta)가 많이 제공되며, 근처 카페에서는 이 지역 특유의 진한 커피와 함께 즐길 수 있어 식사 후의 여유로운 시간을 더해줍니다.

숲과 호수가 어우러진 자연 속 힐링

쇼프론은 도시 자체도 아름답지만, 그 주변 자연환경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도시 바로 외곽에는 러브러크 산림 공원(Lővérek)이 있어, 짧은 트레킹이나 산책 코스로 인기가 많습니다. 특히 가을에는 단풍이 절정을 이루며, 숲속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야생 사슴이나 토끼를 만날 수도 있습니다.

또 하나의 명소는 페르투호(Lake Fertő)입니다. 헝가리와 오스트리아에 걸친 이 호수는 세계자연유산이자 유럽 최대의 내륙 염호 중 하나로, 자전거 도로나 요트 선착장이 잘 갖춰져 있어 여름철이면 현지인들의 휴양지로 사랑받습니다. 맑은 물가에 앉아 와인 한 잔 들고 석양을 바라보는 것, 이보다 더한 힐링이 있을까요?

결론 – 경계의 도시가 주는 자유로움

쇼프론은 참 묘한 도시입니다. 국경 도시라는 이질감 속에서, 오히려 가장 ‘헝가리다운’ 느낌을 주는 도시랄까요. 오래된 유럽의 건축과 헝가리 민족의 자부심, 와인과 예술, 여유와 품격이 공존하는 이곳은 조용하지만 분명한 울림을 남깁니다.

부다페스트의 화려함 뒤에 숨겨진 이 조용한 도시는, 진짜 유럽의 일상을 걷고 싶은 여행자에게 꼭 필요한 쉼표가 되어줍니다. 쇼프론에서의 하루는 결코 크지 않지만, 그 하루가 남기는 기억은 유난히 오래 갑니다.

다음 여행지에 조금 더 느린 도시, 따뜻한 사람들, 그리고 한 잔의 좋은 와인이 있는 곳을 원한다면, 주저 없이 쇼프론을 선택해 보세요. 분명 후회 없는 결정이 될 겁니다.

화재 타워, 쇼프론, 헝가리에서에서 역사적인 주 광장의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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