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은 참 다채로운 도시죠. 고층 빌딩 숲과 화려한 쇼핑몰, 복잡한 거리만 떠올리기 쉽지만, 그 속에 조용히 과거의 시간을 간직한 동네들도 분명 존재합니다. 제가 이번에 다녀온 곳은 ‘셩완(Sheung Wan)’이라는 지역인데요. 이름도 생소했지만 직접 가보니, 홍콩의 옛 모습과 감성을 그대로 간직한 매력적인 동네더라고요. 오늘은 셩완의 역사와 분위기, 그리고 제가 맛본 음식들을 중심으로 여러분께 소개해보려고 해요.
셩완의 역사, 그 깊이를 느끼다
셩완은 홍콩 섬의 서쪽에 자리한 지역이에요. 홍콩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셩완은 아주 중요한 출발점이 되는 곳이더라고요. 1842년, 아편전쟁이 끝난 후 영국군이 가장 먼저 상륙한 지역이 바로 셩완이라고 합니다. 사실 이곳이 없었다면 지금의 홍콩도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걷는 내내 왠지 모르게 무게감이 느껴졌어요.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한눈에 봐도 오래되어 보이는 건물들과, 간판이 바래진 가게들이 눈에 띄어요. 타이펑통(Tai Ping Shan) 지역은 옛 중국인들이 처음 정착했던 동네라고 하는데, 진짜 예전 영화에서 본 것 같은 좁은 골목과 계단길이 이어져 있어요. 한 걸음 한 걸음이 마치 과거로 시간여행을 하는 느낌이랄까요. 참고로 1894년에 이 지역에서 흑사병이 퍼졌었다고 해요. 그로 인해 위생 문제와 공공 보건 시스템이 정비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니, 셩완은 단순히 역사적인 장소를 넘어서 현대 홍콩의 기초를 다진 곳이기도 하더라고요.
걷기만 해도 분위기 가득한 셩완
셩완을 천천히 걸어보면, ‘이런 게 바로 홍콩의 정취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어요. 고요한 골목 안에서 향 냄새가 풍기고, 어느새 오래된 사원 앞에 서 있게 되는 경험이 흔해요. 특히 ‘만모사원(Man Mo Temple)’은 이 동네의 랜드마크 같은 곳인데, 1840년대에 지어진 사원으로 문(글)과 무(무예)의 신을 모신다고 합니다. 안에 들어서면 천장에 매달린 소용돌이형 향이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조용히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공간이었어요. 요즘 셩완은 예술가들의 사랑도 많이 받고 있다고 해요. ‘헐리우드 로드(Hollywood Road)’를 중심으로 갤러리와 앤티크 숍, 디자인 편집숍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전통적인 건물 속에 현대적인 감각이 스며들어 있는 느낌이에요. 길을 걷다 보면 벽면에 그려진 스트리트 아트들도 발견하게 되는데, 뭔가 전통과 현대가 자연스럽게 섞여 있는 이 동네만의 개성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리고 ‘캣스트리트(Cat Street)’라고 불리는 중고 골동품 시장도 흥미로웠어요. 오래된 카메라, 도자기, 그림, 문방구 같은 것들이 한가득인데, 아무리 구경해도 질리지 않더라고요.
셩완의 맛집, 그냥 지나칠 수 없어요
여행의 꽃은 뭐니 뭐니 해도 ‘먹거리’잖아요. 셩완은 그런 면에서도 진짜 만족스러운 곳이었어요. 전통 찻집, 딤섬 가게, 노상식당, 카페까지 한 끼 한 끼가 즐거운 동네였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루커우차하우(Luk Yu Tea House)’라는 찻집이에요. 1930년대부터 운영해 온 곳인데, 들어가자마자 마치 시간 여행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고풍스러운 인테리어에 중국 전통 분위기가 물씬 풍기고, 무엇보다 딤섬이 정말 맛있더라고요. 하가우(새우 딤섬)와 시우마이, 그리고 차슈바오(돼지고기 번)는 기본으로 시켜야 할 메뉴예요. 찻잔에 따뜻한 차를 따라놓고, 천천히 딤섬을 즐기다 보면 정말 여유로운 시간이 흘러갑니다. 또 하나 재미있던 건, 셩완에는 건어물 거리도 있다는 점이에요. 웨스턴 마켓 근처에 위치한 거리인데, 길가에는 말린 오징어, 전복, 해삼 같은 해산물부터 약초까지 다양한 건어물들이 진열되어 있어요. 냄새가 꽤 강하지만, 현지 분위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어서 구경만 해도 좋더라고요. 요즘은 셩완에도 브런치 카페나 퓨전 음식점들이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어요. 전통과 현대, 로컬과 외국 스타일이 묘하게 잘 섞여 있는 동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화려한 빌딩과 북적거리는 중심지 말고, 조금 더 느리게, 조금 더 깊게 홍콩을 여행하고 싶다면 셩완은 정말 좋은 선택이에요. 역사와 문화, 전통과 예술, 그리고 맛있는 음식까지 모두 담고 있는 이곳은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서 홍콩의 ‘진짜 얼굴’을 보여주는 동네였어요. 다음에 홍콩을 방문하신다면 셩완 골목을 천천히 걸어보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여행이 조금 더 특별해질 거예요.